외면과 맹목 118호

절망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보통 사람들은 희망에서 '가능성'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희망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달이 지고 태양이 뜨면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던 사막이 보이기 시작하고, 썩어가는 시체와 벌레들이 나타나며, 나를 사냥하는 자는 보이지 않고, 어디서 나를 호시탐탐 노릴 것만 같은, 언제든지 사실로 판명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망상을 안고서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을 피해 이리저리 갈지자로 뛰어다녀야 한다. 이 산만 넘으면 끝날 것 같던 고통이, 내게 고통을 주었던 그 산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해가 뜬다는 것은 또다른 절망의 시작이다. 그 짓을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삼십년이고 사십년이고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절망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일단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피하려 하더라도 소용없다. 절망은 기습적이지도 않으며 꾸준히 나타나서 오히려 뚜벅뚜벅 걸어와 나의 뒷통수도 아닌 앞이마를 가격해버릴 테니. 그런 면에서 외면과 맹목은 삶에의 축복과도 같은 기제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세상의 절망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외면은 우리 자신을 망각하게 한다. 끝도 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첨탑의 꼭대기로 올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맹목은 우리를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뭔가에 꽂혀서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면 절망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또다른 절망을 잠시라도 제쳐둘 수 있다. 

내게 쏟아지는 잠을 다오, 잠시뿐일지라도 강렬한 쾌락을 주오, 죽지는 않았구나 중간중간 알 수 있을 만큼의 잠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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